본문 바로가기

매일 묵상/사도행전

사도형전 1장 15-20절 (가롯유다와 피밭)

 

사도형전 1장 15-20절

15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의 수가 백이십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며 숨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자 또 다른 두려움으로 지금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지난 3년간 그들과 함께했었던 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불의한 한 사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은 삼십 냥에 예수님을 제사장들에게 넘겨 줍니다. 요즘 가룟 유다를 재해석 하려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역활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룟 유다를 동정할 뿐만 아니라 무죄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언된 일이라고 해서 가룟 유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의 마음에 사악함이 있어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욕망으로 예수님을 쫓아다녔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신념과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시자 그는 은 삼십 냥에 예수님을 팔아 버립니다. 어쩌면 가룟 유다의 모습 속에서 이 세상 교회의 아픈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교회를 나오는 모습은 이제 생소하지도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제사장에게 받은 돈을 그들에게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누가의 표현대로) 피 밭이라고 불리는 '아겔다마'라는 밭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고 표현합니다. (또한 마태는 성소에 받은 돈을 던져 놓고 가룟 유다가 목매어 자살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죄에 대한 죄책감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가 회개했더라면 그는 스스로 그의 목숨을 끊지 않고 백이십 명의 성도들과 함께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당당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는 일에 조금이라도 인간의 노력이 들어가길 원합니다. 또한 인간은 죄에 대해서도 당당하고 싶어 합니다. 목숨을 끊어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우리의 무능력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시편 69편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이 가룟 유다의 죽음에 임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시편 109편을 인용하여 이제 가룟 유다의 직분을 다른 사람이 대체하여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배신한 한 제자를 교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도를 뽑는다는 것은 12 사도가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입니다. 저희가 산상수훈을 통해서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12지파와 12 사도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가시고자 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기 전에 그들은 12번째 사도를 선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12 사도로 대표되는 새로운 공동체(교회)의 구성원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아십니까? 이제 우리에게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증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죄로 인해 좌절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일이 성화의 삶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거룩에 동참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함께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격려하는 함께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