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18-20절
18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오늘 본문과 내일 볼 본문(21-30절)은 가룟 유다에 관한 공통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18절에 “내 떡을 먹는 자가 내 발꿈치를 들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이것은 시편 41편 9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팔레스타인의 문화에서 어떤 사람과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우정의 표시이며, (왕과 신하 사이에는) 충성의 행동입니다. 시편 41편 9절은 다윗의 시로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히도벨입니다. 그는 다윗의 가장 신실한 참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다윗의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다윗을 돕기보단 압살롬을 도왔던 자입니다. 압살롬의 갑작스러운 쿠데타로 인해 다윗은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히도벨의 끝은 좋지 않았습니다. 아히도벨의 제안을 압살롬이 무시하자 아히도벨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집으로 돌아가 목매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아히도벨이 자결했다는 사실을 시편 41편을 통해 인용하십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도 결국은 목매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 동안에 함께 했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시고 예언을 하시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직접 목격했고, 예수님께서 지속해서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온전히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그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사상과 꿈과 유익 앞에서 예수님을 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발꿈치’라는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배신을 기억하게 됩니다. 아담의 배신을 통해서 인간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가룟 유다의 배신의 통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막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이 여인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기 때문입니다. 발 씻기는 사건을 통해서 그의 죽으심의 비밀과 그의 낮아지심의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비밀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증거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복음을 향해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아무리 따라다닌다고 해도 아무런 유익이 없을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성공의 도구로, 복음 받는 방법으로 믿는다면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입니다. 우리들은 심각하게 질문을 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내가 본 것, 경험한 것을 자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있는가? 오직 예수님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오직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우리의 삶 속에서 풍성히 누리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말씀 묵상 후에 드리는 질문
1.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언제 이러한 유혹을 받습니까?
2.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하늘나라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3. 여러분은 믿음의 근거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내 확신에 근거를 두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에게 두고 계십니까? 누구를 자랑하고 있습니까? 나의 지식과 열심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며 그만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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