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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13장 12-17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이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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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12-17절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주와 선생이 되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15절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문자적으로 서로 발을 씻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섬길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섬김을 형식적인 겸손으로 오해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조심해야 할 유형이 있습니다. 계산된 겸손으로 드러나는 행동입니다. 진정으로 낮아져서 섬기는 모습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계산된 겸손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복을 받기 위한 과정으로 겸손의 행동을 한다면 발을 씻기는 사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7절에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발 씻는 사건의 온전한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는 이런 일을 행하기 전에 너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종이기에 주인이 명하는 명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사람에게 종이란 표현은 억울하고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종이란 예수님에게 속한 자요, 그의 인도를 받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다스리는 자가 누구인지 온전하게 인정한다면 그의 종이 되는 것이 억울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장 14-16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냄새’라고 표현을 하고 고린도후서 3장 3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표현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가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닮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향기의 내용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편지의 내용은 그리스도입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결단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는 것만이 아니라 행하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행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떠한 일들(주일을 지키는 것, 기도하는 것, 헌금하는 것, 봉사하는 것, 등등)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행한다는 것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즉,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를 낮추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 바울은 이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그렇습니다. 행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시면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자랑만이 드러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날 것입니다. 내가 낮아질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께 죽기까지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낮아짐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낮아짐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편지가 되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좋은 소식이 되며 성도들에겐 격려와 힘으로 전달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말씀 묵상 후에 드리는 질문
1. 예수님께서 세족식을 행하신 것은 우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족식인가요? 아니면 어떤 일을 행하여야 합니까?
2. “너희가 아는 것을 행하면 복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한 복은 무엇을 아는 것으로부터 나옵니까? 세상의 복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3. 우리는 그리스도의 냄새로, 편지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얼마만큼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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