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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11장 17-32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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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 17-32절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저희는 계속해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르다의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15절에 이 사건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게 하려는 믿음과 마르다가 믿었던 믿음을 비교하기 원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씀을 듣자마자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녀는 열정이 있는 자입니다. 그녀의 열심만큼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 또한 대단한 것입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좀 일찍 오셨으면 하는 원망처럼 들리지만 만약에 일찍 오셨더라면 병을 고쳤을 것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이 얼마나 확신에 찬 고백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간구에 응답하시듯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 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러면서 27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모습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유사합니다. 아니 이보다 완벽한 신앙 고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선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실 때입니다. 마르다의 반응은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도대체 세상을 무너뜨릴 만한 믿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올바른 답을 말하는 것이 실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확신과 지식으로 신앙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마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마지막 날 믿는 자들이 부활할 것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썩은 냄새가 나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에 대한 믿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이미 마지막 날이 이 땅에 임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날, 즉 ‘종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다는 뜻입니다. 마르다는 입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부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었던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대해 믿게 하려는 예수님의 계획이 담겨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죽어서 갈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신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요한복음 11장의 주인공은 나사로가 아닙니다. 제발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에 모든 관심을 두지 마십시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것들, 천국의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이 땅에서 누려야 하는 것이 믿는 자들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르다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 기적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목격하며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12장에서 바쁜 마르다의 모습 속에서 예전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연약하고 지식적인 고백이 하나님 나라를 만날 때 진정한 고백으로 바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온전한 고백을 받아 내셨던 것처럼 마르다에게도 온전한 고백을 받아 내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도 온전한 고백을 받아 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 기쁨과 풍성함을 이 땅에서 누리고 나타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던 그 기적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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