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33-44절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이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아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사건의 주인공은 나사로도 아니요, 마르다와 마리아도 아닙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가 얼마나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기 예수님의 애절한 사랑의 표현이 있습니다.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나사로의 죽음 앞에 마리아와 유대인들은 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유대인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는 이유는 나사로의 죽음만이 아니라 거기 모은 유대인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서 호흡하고 있지만 죽은 자와 똑같은 상태에 있는 자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무능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전도서의 고백처럼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죽음을 피할 갈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인간의 삶은 시작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무덤 안에 썩어져 가고 있는 나사로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러나 여기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처럼 무덤 안에 계셔야 합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자기 죽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썩어져 갈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영원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을 떠나 사망의 권세 아래로 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닙니다. 이 눈물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에 흘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사건을 통해서 무리를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나사로와 같이 썩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사로의 무덤을 보아야 합니다. 그 무덤 속에서 나사로의 모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수의를 입고 썩은 냄새를 내는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에게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로 인해 썩어져 없어질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무리(우리)에게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베풂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는 은혜를 증거하십니다. 이 은혜를 베푸시는 목적이 무리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죽음 속에서 생명을 맛본 나사로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나사로를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축복을 이 땅에서 누림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말씀 묵상 후에 드리는 질문
1.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눈물이 우리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나사로야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죽은 나사로가 무덤 밖으로 나옵니다. 이런 기적이 우리에게 일어났습니까?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디에서 살아난 것입니까?
3. 나사로가 살아난 것(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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