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묵상/요한일서

요한일서 3장 10-12절

반응형

요한일서 3장 10-12절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었으니 어떤 이유로 죽었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의 차이점이 있겠지만 오늘 본문은 그 차이점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들은 서로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며 내가 섬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가인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동생인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그는 분노하며 결국은 아벨을 쳐 죽입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첫 번째 살인 사건입니다. 왜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까요? 사실 가인의 살인 사건은 아벨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연히 자신의 제사를 받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기다렸던 여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뱀에게 선포되었던 저주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은헤를 알아챈 아담은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부릅니다. 하와의 뜻은 모든 산 자의 어머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첫 째 아들을 낳은 후에 그의 이름을 가인이라고 부릅니다. 가인의 뜻은 ‘얻음’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여인의 후손을 얻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모의 지대한 기대 속에서 자라난 가인은 당연히 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를 통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읠 제사를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잣대로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고 아벨읠 제사를 받으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거룩한 것이요, 의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 다시 믿음의 원리를 이야기 해 줍니다. 사도 요한은 가인의 행위와 아벨의 행위를 비교합니다. 가인의 행위는 우리가 알다시피 악합니다. 그는 형제인 아벨을 죽인 자요. 하나님께서 제사를 당연히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미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서 생각(선악과를 먹을 때 뱀이 유혹했던 내용이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제사를 들이고 죽었습니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아벨은 의로운 제사를 드렸고 그의 행위는 의롭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약한 아브라함을 의로 여겼던 것처럼 아벨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벨의 의로움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여기서 형제란 쉽게 말하면 성도들입니다. 함께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은 자인데 말 한마디에, 엉뚱한 행동 때문에 쉽게 상처를 주고 받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쉽게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힘들고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불가능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그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불가능한 일을 조금씩 조금씩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에 나를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제를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능력을 믿고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으로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을 의지하여 형제를 서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연약함을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을 경험했기에 서툰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서툰 사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이 나타나는 공도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반응형

'매일 묵상 > 요한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일서 3장 16-18절  (0) 2023.06.06
요한일서 3장 13-15절  (0) 2023.06.01
요한일서 3장 7-9절  (0) 2023.05.30
요한일서 3장 3-6절  (0) 2023.05.29
요한일서 3장 1-2절  (0) 20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