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7절
9: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보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오늘 본문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은 심한 논쟁을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부르시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마리아인,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지적하는 유대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만나십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누구의 죄로 그가 맹인이 되었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맹인을 통해서 드러날 하나님의 계획에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은 빛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옆에서 빛에 관해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번도 빛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빛에 대한 호기심이 있더라도 빛에 대해 답답함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맹인은 이미 어둠에 익숙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빛이 없는 어둠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들은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르기 전에는 어둠 속에 거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어둠이 편안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오해는 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제대로 설명만 한다면 상대방이 이해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속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아무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은혜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과 진리와 생명에 대한 어떠한 제안이나 권면을 하셔서 우리가 그것을 믿고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이라는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라는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원에 대한 어떠한 감각도 없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요구도 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맹인의 눈을 열어야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셔야 빛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초막절의 촛대를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참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빛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실로암의 뜻은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만이 눈을 떠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들의 신앙의 근거를 우리의 지식이나 능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쉽게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나의 지식이나 능력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알면 절대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꼭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근거를 절대 자신에게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두어야 합니다. 내가 깨달아서 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나의 눈을 뜨게 하셔서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계속해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의 이야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복음을 알 수도 없고 찾을 능력도 없는, 날 때부터 맹인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능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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