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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8장 12-20절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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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2-20절

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화 함께 계심이라 17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이 말씀을 성전에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초막절에는 제단에 물을 뿌리는 예식과 30m 크기의 촛대를 세우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이 예식들이 생긴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에서 유대인들이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7장에서 유월절 큰 날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라고 외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이 있는 성전은 가짜이고 예수님이 진정한 성전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이제 8장에서는 거대한 촛대 앞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외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장 5절에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지적합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과 대화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빛을 깨닫고 알아 좇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빛이 우리를 비췄지만, 그것을 깨달을수록 좇아갈 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살려 주셔야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상의 빛이라"라는 말씀 속에는 창조의 빛과 구원의 빛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지속해서 빛이신 예수님, 즉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출애굽 후에 홍해 앞에서의 불기둥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다 건너가기까지 불기둥으로 애굽 병사들을 막으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억하십니까?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지만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삼키려고 몰려왔지만, 불기둥 앞에서 무력해진 애굽의 병사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증언이 참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참되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5장부터 지속해서 논증하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안다면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증인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간증을 합니다. 그런데 간증의 내용을 들어 보면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의 성공 스토리에 예수님의 이름만 집어넣습니다. 무슨 성형 수술 광고처럼 수술 전과 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빛을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간증이라면 이 얼마나 헛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15절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육체를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의해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죄를 지적하면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하는데 인간은 오히려 자신을 지키려고 합니다. 가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자신 스스로가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유익과 우월감을 나타내려고 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들과 같은 감사입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이냐? 만약에 우리의 의를 위함이라면 바리새인과 똑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열심히 교회 생활하고 선하게 살지만,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것으로 그가 빛 되심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자신과 보내신 하나님만으로 증명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세상의 것으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하늘의 것으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원하십니까? 당연히 세상은 세상의 것으로 증명할 때 좋아합니다. 돈, 명예, 지식, 자식, 건강으로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마술램프의 지니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성공의 도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됨을 증명하는 것은 오직 하늘의 것들로 증명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증명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살아가는 자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바울처럼 내가 부유하거나 궁핍하거나 상관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에게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증명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사는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담대하게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의 원리가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만족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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