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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로마서

로마서 3장 23-27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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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장 23-27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사도 바울은 25절과 26절에 반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한다고 강조합니다. 25절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과한다는 의미는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나 눈을 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넘으시고’(유월 Pass over)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출애굽기 12장 21-23절에 유월절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3절에 “피를 보시며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유월절 날에 어린 양의 피가 문과 문설주에 뿌려져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 피를 보고 넘으신다(Pass over)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라는 말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 우리의 마음은 찢어질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우리를 위한 것으로 생각할 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살신성인의 감동은 십자가의 사건 외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이차돈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신라의 법흥왕 때에 불교를 국교로 세우는 일을 했던 사람이 이차돈입니다. 그는 불교를 숭상했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차돈은 죽으면서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부처가 만일 신령스럽다면 내가 죽을 때 이적이 있으리라” 이차돈의 예언대로 그가 목 베임을 당하자 목 가운데에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쳤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이 흔들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차돈처럼 자신의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헌신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는 감동과 능력과 십자가가 주는 감동과 능력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십자가의 사건은 단순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표현만으로 십자가의 사건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용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은 오직 사랑이시다’라고 정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말로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라고 선언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죄를 미워하시고 죄의 삵은 사망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의, 공의, 거룩, 영광)을 만족시키는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흠이 없는 화목 제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 절망 속에서 21절에 “곧 이 때에”라는 희망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함을 만족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장 5-12절에 하늘에서 나신 예수님께서 율법을 순종하시며 지키신 이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끓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월절 날에 모든 장자처럼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날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렸던 유대인들의 장자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어 이 땅에 성육신하셨고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의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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