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23-26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
오늘 본문인 25절과 26절에선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되었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25절을 중심으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화목 제물로 우리에게 임하는지는 목격하게 되실 것입니다. 화목이란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깐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말은 전에는 화목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왜 하나님과 인간은 화목하지 않았나요? 요한복음 8장 4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하나님과 화평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의 아비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 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거짓에 속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로마서 1-3장에서 지속해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을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죄의 사망에 있는 자들은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누가 화목하는 일에 착수하는가? 사람들은 인간이 화목하게 하는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신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한국에는 굿을 많이 했습니다. 애를 못 낳는 것도 신에게 잘 보여야지 점지해 주는 것으로 생각해서 굿을 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더 큰 귀신을 불러와서 쫓아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을 달래서 복채를 더 올려놔서 그 일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를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돈으로도, 열심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돈으로, 자신의 열심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런 행동은 창조주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시작하십니다.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먼저 사랑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화목 제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것입니다.
화목 제사란 무엇인가? 세상 사람은 자신이 드리는 제물의 향기와 짐승들과 심지어 인간을 제물로 신들을 매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제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사가 아닌 자신에게 필요한 성공을 얻어 내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돈과 열심으로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십일조 생활 열심히 할 테니깐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그들의 간구는 돈 놓고 돈 따먹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화복 제물’이라는 원어의 뜻은 ‘속죄’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딱 두 번 나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9장 5절(“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에서 이 단어를 ‘속죄소’(시은좌)라고 번역했습니다. 시은좌라고도 불리는 속죄소는 언약궤 위에 있습니다. 덮개와도 같은 것인데요.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시은좌에 피를 뿌립니다. 언약궤 안에 증거 판인 율법이 들어가 있습니다. 율법 외에도 만나가 들어가 있는 금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언약궤 안에 들어가 있는 율법, 만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하나님의 언약 신실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시은좌의 양 끝에는 두 그룹이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화염검을 가지고 에덴동산을 지키는 그룹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죄가 드러나면 그룹들은 화염검으로 우리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죽어야 하는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시은좌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대신하여 누군가의 피가 뿌려져야 합니다. 즉, 화목제물이라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에 대해 속죄하시기 위해 시은좌에 그의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매년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시은좌에 뿌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피는 인간의 죄에 대해 완벽하게 속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를 완전히 씻어 주기에 부족합니다. 그래서 완전한 피가 속죄소에 뿌려져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완전한 피가 누구의 피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시은좌에 뿌려질 때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해 하는 온전한 화목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행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부족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만이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십자가의 보혈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비집고 들어갈 데가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하나님과 화목한 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로 말미암아 우리의 존재가 변했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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