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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4장 10-19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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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요한복음 4 10-19 

1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크나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여기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이르시되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엇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니니 네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사마리아 여인과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번에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로 가셔서 우물가에 있는 여인과 만나십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목이 마르셔서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온 시간이 여섯 시쯤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시간으로 여섯 시는 우리의 시간으로 12시입니다.. (유대인의 시계는 새벽 6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12시에 물을 길으러 다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척 덥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우물가는 현재의 개념으로 친교의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도 없는 우물가에 혼자 물을 길으러 나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부닥쳐 있지만 물을 마셔야 하므로 할 수 없이 정오에 아무도 없는 우물가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둘의 대화는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 “물을 달라”
사마리아 여인: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예수님: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분명히 예수님께서 먼저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께서 단순히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도전적으로 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생수를 얻겠사옵니까….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사마리아 여인: “주여 그런 물을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은 그녀 스스로 우물물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물을 올릴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예수님께 당당히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릇도 없으면서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 새로운 물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녀가 가질 수 없었던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물을 주신다는 이야기에 그녀의 태도가 변합니다. 그녀는 그 물을 갖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물을 갖고 있다면 다시는 이 우물가로 나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과 같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여인의 관심은 하나님의 선물과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오직 그녀가 필요한 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가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해서 교회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건강하고, 가정이 행복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합니다. 이런 믿음은 기독교의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는 믿음은 가짜입니다. 단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종교적 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바로 이런 요구를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사마리아 여인: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사마리아 여인: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자기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간청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지적합니다. 왜 그녀가 이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길으러 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지적합니다. 그녀는 자기의 죄에 대해 피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영생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고백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보고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난 후에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의 변화를 보십시오. 처음에는 유대인이라 칭하다가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에서 “선지자”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신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실 때, 이러한 고백을 기필코 받아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와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익과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살았던 우리에게 찾아와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게 만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소유한 자들이 영생의 생수를 마시는 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의 터전이 우물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우물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믿지 않는 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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