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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월요일에 함께 읽는 시

[월요일에 읽는 한 편의 시] 감사하는 마음_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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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계절에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지 되돌아 본다가 읽게 된 시이다. 사람들(소위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금은의 그릇에만 관심을 가지는 세상에서 하늘의 곳집에 있는 빈 그릇을 생각해 본다.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한탄하는 우리들에게 내가 누구인가, 나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준다.  이번 감사의 계절에는 나와 나의 주인을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하는 마음 

                                          김현승 시인

마지막 가을 해변에 잠든 산비탈의 생명들보다도
눈 속에 깊이 파묻힌 대지의 씨앗들보다도
난로에서 꺼내오는 매일의 빵들보다도
언제나 변치 안는 온도를 지닌 어머니의 품 안 보다도
더욱 다수운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언제나 은혜의 불빛 앞에 있다.

지금 농부들이 기쁨으로 거두는 땀의 단들보다도
지금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저녁 항구의 배들보다도
지금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택가의 포근한 불빛보다도
더욱 풍성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것들을 모두 잃는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받았기에
누렸기에
배 불렀기에
감사하지 않는다.
추방에서
맹수와의 싸움에서
낯선 광야에서도
용감한 조상들은 제단을 쌓고
첫 열매를 드리었다

허물어진 마을에서
불 없는 방에서
빵 없는 아침에도
가난한 과부들은
남은 것을 모아 드리었다
드리려고 드렸더니
드리기 위하여 드렸더니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

마음만을 받으시고
그 마음과 마음을 담은 그릇들은
더 많은 금은의 그릇들을 보태어
우리에게 돌려 보내신다.
그러한 빈 그릇은 하늘의 곳집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감사하는 마음 -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 김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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