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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요한일서

요한일서 3장 17-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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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많은 사람들이 심판 날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혹시 나는 알곡이 아닌 쭉정이로 불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을까?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게 되돌아 볼 수록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져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심판 날에 성도를 담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심판을 예수님께서 감당하셨기에 이제는 더이상 마지막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이로써’로 시작됩니다. 즉 16절에서 강조했던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러므로  심판 날에 두려움이 없는 것은 우리의 사랑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나 신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온전하게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이 얼마나 위대한 선언입니까? 구원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시작한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사랑의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로마서 5:10-11)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그의 사랑을 경험하고 즐거워 했기에 형제를 사랑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질문은 얼마큼 사랑을 해야 하나요?로 옮겨 갑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말씀하시고 왕으로 부터 만 달란트의 빚을 용서 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붙잡아 옥에 가두는 비유를 통해서 용서를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상상할 수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자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작은 액수의 빛을 탕감해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종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의미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인정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알 때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형제를 사랑할 능력도 마음도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내신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함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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