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 묵상/마가복음

마가복음 14장 27-31절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가복음 14장 27-31절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모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자기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완전히 상반된 모습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의 특징은 열심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겠다고 할 정도의 열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왜 자기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의 열심으로 결단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대상을 모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셔야 하는 곳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따라가겠다고 결단을 합니다. 따라가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 즉 십자가의 죽음이 무슨 의미인지를 베드로는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다니는 것, 금요 성경 공부에 참석하는 것, 헌금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들이 믿음의 잣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만약에 열심이 믿음의 잣대라면 여러분은 베드로보다 더 열심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믿음을 정의할 때 우리의 문제는 상대적인 열심으로 신앙을 비교하고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믿음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믿음은 가짜이며 사악한 것입니다. 인간이 보기에 열심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예수가 없는 봉사, 헌신, 예배는 자기의 열심에서 나오는 모조품입니다. 참 신앙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드러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인격이 드러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일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 신앙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짓 신자에 대해 빌립보서 3장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볻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라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느 곳에 있습니까? 땅의 축복만 바라보고 있는 자입니까? 내 배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입니까? 땅에서의 축복만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가짜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늘의 축복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원하는 사람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다음에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는 말은 꾸지람이 아니라 신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인간의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능력을 깨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만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실패가 우리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까지 인도해 나가시는 것을 베드로는 경험하게 됩니다. 즉 나의 열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열심으로 우리가 사는 것을 아는 것이 온전한 신앙고백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예수님의 열심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