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19-24절
19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라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며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예수님을 보게 된다 것으로 이해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보고 일어날 상반된 반응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20절)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은 슬픔의 사건입니다. 그들의 인생을 바쳐 따랐던 예수님께서 허무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불완전한 애통이지만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으로 애통함이 기쁨으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기뻐하는 모습은 제자들이 기뻐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자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의와 열심을 질책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기뻐했던 기쁨은 악한 기쁨입니다. 자신들의 죄와 무능력을 지적했던 예수님께서 죽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은 영생의 기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맛보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다시 보는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묻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묻지 아니한다”라는 단어는 관주를 보면 “구하지 아니한다”라는 뜻으로 적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다시 보는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다시 보는 날에는 영생이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다시는 구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 바로 뒤에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는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구하면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무엇이든지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상반된 논리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에 살던 자가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더는 아무것도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이 누릴 수 있는 하늘나라의 모든 유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늘나라의 유업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것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못했던 것이며, 하늘나라의 유업을 구하지 않고 땅의 것을 구했기 때문에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땅의 소유를 탐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유업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소유가 우리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세상은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미워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죄에 대한 애통이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놓인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담대하게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하늘의 기쁨을 우리의 삶 속에서 풍성히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말씀 묵상 후에 드리는 질문
1.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은 무엇입니까? 세상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근심하지만 기뻐할 때가 옵니다. 언제입니까? 십자가의 죽음이 성도들에게 근심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은 누구의 도움으로 가능합니까?
3. 기쁨을 누릴 때에 더는 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약속을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우리의 간구(기도)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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