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 14-22절
14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부자 도시였습니다. 60년경 큰 지진 일어나서 큰 피해를 보았지만 로마 중앙 정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도시였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의 행위를 미지근하다고 표현한 것은 지정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도시의 물은 석회처럼 보일 정도로 마실 수 없는 물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물 공급은 수도관을 통하여 먼 수원지로부터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오디아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미지근해서 겨우 마실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북쪽으로 6마일 떨어진 곳에 ‘히에라폴리스’라는 치료 효과가 있는 온천이 있었고 남쪽으로 10마일 정도 내려가면 ‘골로새’라는 도시가 있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찬물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편지를 보내시는 예수님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아멘”이라고 표현하시는 이유는 이사야 65장과 관련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을 보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아멘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창조를 완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께서 칭찬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책망만을 받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정금같이 창조해 나가실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요하기 때문에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오히려 영적으로 더 큰 위험과 빈곤에 빠지게 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수 없고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행위를 오늘 본문에서는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의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미지근한 상태의 믿음을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해결책으로 불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불로 연단 한 금을 사라는 뜻의 의미를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낮아지심의 정금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지는 흰옷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흰옷입니다. 그리스도의 흰옷은 죄로 인한 부끄러움을 해결 시켜 주며 천국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눈이 먼 자들에게 눈약을 바르라고 명하시는 것은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치시는 장면을 통해서 소경이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것처럼 어둠에 속한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약을 통해서만 눈을 떠서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집 주인은 누구입니까? 만약에 집주인이 라오디게아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상태입니다. 그들의 신앙 상태는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열정적이지도 냉철하지도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두 주인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들을 수 없는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20절의 집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집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집으로 돌아와 주권적으로 문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그들이 못 들은 척을 한다면 예수님께서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진정한 위로와 복입니다. 이 위로와 복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예수님의 열심으로 그의 자녀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아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의 기쁨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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