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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3장 1-6절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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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장 1-6절
3:1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준비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오해는 무엇이며, 과연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이야기를 통해 세례 요한을 '준비하는 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우리 또한 준비하는 자입니다. 세례 요한이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자였다면,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자로서, 저는 세례 요한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준비에만 머무른다면, 우리의 준비는 실패하는 준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우리가 세례 요한보다 더 우월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가를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누가는 세례 요한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함께 세례 요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하나의 도구로 그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방이, 열방이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 서론 부분에 세례 요한을 등장시킵니다. 그래서 그의 탄생과 연결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시작하기 바로 그전에 세례 요한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예언에 근거해서 이 땅에 왔고, 또 그가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 강조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중요합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볼 때도 조연이 너무 잘하면 주연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조연이 대단하다고 하다가 주연의 존재감을 놓쳐버리면 그 드라마는 망한 드라마가 됩니다. 저희가 성경을 읽을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조연들에게 너무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구약을 봐도 아브라함이 주연일까요, 조연일까요? 그런데 왜 주연처럼 읽으십니까? 다윗이 조연일까요, 주연일까요? 조연이죠. 그런데 우리는 다윗을 주인공처럼 읽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은 당연히 조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관심이 그에게 쏠려 중요한 것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주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사실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세례 요한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봐야 할 지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를, 이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저희가 읽지는 않았지만, 3장 1절부터 2절에는 예수님께서 오셨던 시대적인 상황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고, 헤롯이라는 왕 아래에서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저희가 1장과 2장을 통해서, 성전이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때가 찬' 것입니다. 때가 차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그 의미는 마지막 종말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도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저희 딸아이가 어제 전화해서 저희 아내하고 이야기하다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엄마, 트럼프한테도 투표하지 말고 바이든한테도 투표하지 말래." 그럼 누구한테 투표하라는 걸까요? 결국 그겁니다. 이쪽을 봐도 한숨이 나오고 저쪽을 봐도 한숨이 나옵니다. 이게 미국만 그럴까요? 한국도 똑같죠. 여기를 봐도 한숨, 저기를 봐도 한숨.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은 바로 이렇습니다. 세상을 봤을 때는 한숨밖에 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의도적으로 역사는 설정되어 있단 말입니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예수님께서 이제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저희가 알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을 성경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다는 것은 결국 2절에서 보듯,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임하여 주어진 사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주셨던 사명, 소명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 회개의 세례라는 것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시대적 상황과 이 세례 요한이 했던 역할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거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도로서 이 종말을 살아갈 때, 시대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세상을 향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참 어렵죠. 이렇게 어렵고 거대한 담론을 얘기하니까 답답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른 이야기로 하면, 여러분이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문제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겠죠. 제가 아까 예배를 시작할 때 이야기 드렸던 내용처럼, 우리의 잉크가 말라서 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져 있습니다. 세상도 종말론적인 상황에 있고, 우리의 생활도 그렇게 녹록지 않은 상황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세례 요한이 그것을 외쳤던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죄를 세척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세척하는 그런 일들이 시대적인 종말을 살아가는 세대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성도들은 거기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거죠.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예언되었던 일들의 하나였다고 오늘 누가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4절에 보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예비하는 일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의 시작을 “준비를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준비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세례 요한의 준비는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 평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얘기했던, 세례 요한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해의 부분입니다. “보아라, 세례 요한은 이렇게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봤을 때 산이 무엇인가? 그것을 평탄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실 때 내 인생이 그분의 오심을 방해하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가 예수님이 오시는 데 편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자꾸 제거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우리는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렇게 들리지 않으세요? ‘그건 맞는 것 같은데 왜 목사님은 그렇게 얘기하지?’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 한번 잘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편한 길을 걸으려고 오셨나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걸으신 길은 어떤 길이죠? 십자가의 길이잖아요. 고난의 길이잖아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부터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의 인생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를 좇아가면 무슨 큰 대접을 받는 것처럼 봤지만, 예수님은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궁에 있지 않고, 부자와 함께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 세리들과 함께 있었고, 그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욕을 먹는 일들이 예수님의 인생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오실 때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잣대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럽니다. 특히 목사들은 예수님께 큰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의 나라를 위해 무언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소명의식 때문에, ‘내가 내 몸을 불사르고 내가 헌신을 해서, 하나님이 좀 더 영광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이 땅에서 속된 말로 얘기하면 예수님께서 평탄한 길을 가시게끔 하기 위해서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목사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좀 있다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갖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주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결국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미리 걸어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끝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세례 요한은 성경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의도적으로 세례 요한을 의로운 자처럼 이야기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됩니까? 옥에 갇힌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올바른 얘기를 했습니다. 헤롯 왕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 당시에 있는 권세 잡은 자들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어떻게 됩니까? 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누구의 모습과 유사하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결국 이 길을 예비하라는 건 우리가 뭔가 노력해서 예수님이 좀 더 편안하게 가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미리 살아보는 것이 준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얘기하면, 골짜기를 메우고 산들이 낮아지는 것은 결론적으로 회개와 회개의 세례가 선포됨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회개에 동참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왜 그러냐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훌륭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그때는 율법의 시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점으로 그전에는 율법, 구약 율법 아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 아래에서 외쳐야 하는 것은 회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 회개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에 찔려서 우리의 자아가 무너지는 일들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이 무너지는 일들. 그래야 그다음에 뭐가 나오는 거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일들이 능력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준비의 개념이 아니라, 내가 뭔가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에 동참하는 일들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종말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는 되게 놀라운 혜택(benefit)이 있습니다. 우월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에 근거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자가 되었다는 거죠. 결과론적으로 저희가 그 문제를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 일단 거기를 가기 전에,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보면 되게 큰 반향(sensation)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러니까 시대적으로 이러한 말씀이 전파될 때 사람들은 반응했던 것 같아요. 현대의 종말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도 사실은 외치지 않기 때문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들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일들에 열심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이 무리들, 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세례 요한의 반응이 참 희한해요. 뭐라고 얘기하냐면, 7절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뭐라고 얘기해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얘기하지 않고, “아, 그래도 너희들은 참 하나님의 그 말씀에 참 잘 반응하는구나”라고 얘기하지 않고, 뭐라고 얘기한다고요? “독사의 자식들아.” 참 대단한 거죠?

여러분이 항상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저희 교회는 잘 안 하시지만, 보통 어떤 집회를 가거나 큰 교회에 있는 분들은 항상 그런 얘기를 해요. “아, 은혜! 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그분을 어떻게 해요?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거죠. 그게 대부분의 예의로 얘기하든 어떻게 얘기하든, 그분이 은혜받았으니까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면 그분을 얘기할 때도 되게 좋게 표현을 한단 말이에요. 지금 세례 요한은 어떻게 하냐면, 그렇게 나온 사람에게, “저 은혜받았어요,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변할 것 같아요”라고 나왔는데, 그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냐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해요.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게 무슨 얘기죠?

세례 요한의 의도는, 세례 요한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내용들이 자주 반복되는데, 이렇게 얘기해요.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하면서 “귀가 있어도 너희는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너희는 보지 못하고.” 그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표현들을 써요. 말씀이 전해지는데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막는다라는 듯한 표현을 쓰고 있어요. 그거와 똑같은 얘기를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거예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그 올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분명히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럼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말하는 사람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왔는데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진노를 피할 수 있느냐?”라고 얘기하면, 그래서 오늘 본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질문이 뭔지 아세요?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얼마나 답답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세리가 나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군인들이 나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답답하니까. 내 마음은 뭔지 모르게 뜨거워지는데, 내 마음은 왠지 뭔가 회개하고 싶어 하는데, 그런데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하고, 세례 요한은 “너는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얘기하니까, 그들의 반응은 뭐냐고,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랬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답답함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얘기해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런 답답함으로 찾아오는 사람에게 무슨 답을 주실 수 있으세요? 어떤 답을 주실 거예요? 바로 세례 요한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이 달라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넌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요? 우리는 다른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는 똑같은 답을 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죠. 왜요? 우리가 받은 것들을 알지 못하니까 우리도 똑같이 “그럼 나는 무엇을 할까?”라고 서로 묻고 있는 거예요. 재밌죠. 이런 영화도 있는데요. ‘달리다 세월 가니’... 세월 가니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을 서로에게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할까?” 물어봤는데,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그럼 어떻게 할까?” 그거는 준비하는 게 아니죠. 성도에겐 분명히,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준비된 답이 있습니다. 그것을 ‘복음’이라고 하고, 그래서 성도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준비된 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 준비된 답이 뭐냐면, 일단 세례 요한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라고 얘기했을 때 그 답이 무엇이죠? 그 답은 이렇게 얘기해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얘기해요. 세례 요한의 답이에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러면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이냐?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얘기해요. 옷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는 거예요. 네가 좀 더 갖고 있으면 그걸 나누라는 얘기를 해요. 그리고 부과된 것 외에 거두지 말라는 거예요. 너희의 권위와 너희의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강탈과 거짓 고발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다른 말로 얘기하면, 회개의 세례를 요구했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뭐냐면, 말로만 회개하지 말고, 회개할 때는 마음과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칭송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어떻게든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좋은 것, 더 높은 지위에 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해요. 여러분, 성공의 스토리를 보세요. 성공한 자, 여러분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이름들을 다 생각해 보세요. 1등만 얘기하잖아요. 운동도 1등만 최고고, 돈을 버는 것도 1등만 최고고. 이것이 세상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얘기하는데, 너무 재밌는 건 뭔지 아세요? 두세 사람만 모여도 그 가운데 1등을 찾아요. 안 그러세요? 두세 사람만 모여도 가장 부유한 사람을 찾아서 “네가 돈 많으니까 네가 음식 사” 이렇게 얘기하는 거 너무 쉽게 하잖아요. 두세 사람만 모여도 그 가운데 누가 더 힘(power)을 갖고 있는가를 찾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상대적인 자부심, 상대적인 우월감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상대적인 박탈감, 누군가는 상대적인 비굴함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이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세상이 현혹하는 일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합당함은 나누라는 거예요. 합당함은 겸손해지라는 거예요. 이런 회개의 세례가 왜 요구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안 살고 있으니까 회개의 세례가 이루어진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당연한 거예요.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아요.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건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거예요.

여기까지가 세례 요한의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시대정신입니다. 여기까지가 세례 요한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자, 문제가 뭘까요? 여기까지가, 조연으로서의 세례 요한의 문제는 뭘까요? 세례 요한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반응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여러분, 합당한 열매를 맺고 계세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살펴볼 때 합당한 열매를 맺고 계세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것들을 나누고 계세요? 여러분은 여러분이 갖고 있는 조그만 권위를 내려놓고 계세요? 강탈하고 있지 않으세요? ‘나는 권위 잡은 거 없는데?’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여러분, 부모잖아요. 여러분, 부모로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자녀들에게 강탈하고 계신가요? 요구하고 계신가요? 저는 자녀일 때 그거 못 하고 계신 거예요… 저는 자녀일 때 그거 몰랐어요.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니까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많이 거짓으로 다른 사람을 고발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그렇게 얘기해요. 너희가 받은 급료를, 너희가 받은 월급(salary)을 만족할 줄 알라고. 다른 말로 하면, 너희가 지금 어디에 처해 있든 너희가 지금 받고 있는 것으로 자족하고 있느냐? 이것보다 더 힘든 게 요즘 세상에 어디 있어요? 만족 못 하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여러분, 합당한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지 않다면,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얘기하고 있는지 아세요? 너희는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이것이 구약의 논리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논리입니다. 너희가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너희는 좋은 곳간에 갈 것이다. 너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럼 너희가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어떻게? 불에 던져진다는 거예요. 죄송하지만, 죄송할 건 아니지만,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 이 세례 요한의 가르침, 세례 요한의 선포에 근거하면, 율법에 근거하면 우리 모두 어디로 가야 하나요? 혹시 다른 생각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제가 확신컨대 사도 바울에 근거해서 얘기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에 이른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세례 요한의 한계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한계. 바로 그것이 오시는 이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능을 지적하고, 우리가 할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 그때,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이가 오십니다. 그 이가 오셔서 자기의 것들을 나누어줘요. 자기의 것들을 나누어주는 걸 어디까지요? 자기의 목숨을 내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바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찍혀 불에 던져져야 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은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했습니다. 제가 설교의 시작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세례 요한이 하는 일과 유사한 일들을 종말을 앞두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선포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똑같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민하고, ‘뭔가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 정말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복음의 이야기가 선포되었을 때 여러분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질문할 것입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돼요? 당신의 인생이 정말 하나님을 찾고 예수를 사모하고, 당신이 뭔가 다른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할 때, 여러분에게 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그동안 했던 열심, 여러분이 했던 그 경험을 얘기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사실 율법에 근거하여 얘기하는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절망의 이야기밖에 없어요. 왜요? 아무리 지켜도,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내 인생을 희생해도, 아무리 목사로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신실하게 섬긴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질문에 여러분들이 대답해야 할 답은 이미 2000년 전에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뭐라고 얘기해야 되느냐면, “그 율법을 우리가 지킬 수 없지만, 우리는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합당한 열매를 맺으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제 뭐만 하시면 된다고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됩니다”라고 전하는 거예요. 왜요? 우리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어떻게 사는 거죠? 그리스도의 법을 순종하면서 사는 거예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내가 받은 은혜 때문에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섬기는 거예요. 이제 기쁨으로 나의 것들을 나누는 거예요. 이제 기쁨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거예요. 낮아지는 거예요. 내가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은혜로, 긍휼하심을 내가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내 자녀에게 권위로 그들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섬기는 일들을 하는 거예요. 해보는 거예요, 노력하는 거예요. 왜요? 내가 받은 은혜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그것이 세상에서 1등을 찾으려 정말 피 터지게 싸우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내게 받은 은혜가 족합니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이 가장 선한 거고, 내가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실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만족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받는 일들, 내가 갖고 있는 것들, 내가 소유하는 것, 내가 감사합니다, 내가 자족합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내게 있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의 것들로 부럽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면, 사실 여러분 1등 싸움 안 하셔도 되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인생이 왜 힘든지 아세요? 제가 보니까 1등 싸움 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가 꽤 괜찮은데, 여러분은 자꾸 비교를 하니까 다른 애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왜요? 이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내 자녀를 삼아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어떻게 되었든, 여러분의 인생의 굴곡이 어떻게 되었든,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부모님을 주셨어요. 여러분이 자족하셔야 돼요. 마찬가지예요. 우리 공동체에 대해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공동체를 주셨어요. 우리가 해야 할 건 자족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해야 할 건 뭐냐면,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날을 준비하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우리가 보기에 대단한 사람처럼 보여요. 그리고 성경은, 누가는 어떻게 보면 그로 말미암아 이제 나팔 소리가, 이제 구세주이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기점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그 나팔 소리만 듣고, 그 나팔수만 보고 있다면 우리는 그 후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망칠 수가 있어요. 준비만 하다 망치는 것들. 저는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미 이뤄 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요로운 은혜 안으로 들어가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종말을 사는 우리들의 권세이고 능력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에 이렇게 얘기해요.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지만, 천국에서는 그가 가장 작은 자라고 얘기해요.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보다 세례 요한이 작아요. 우리는 다 천국에 있는 자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있는 자로서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이 뭐예요? 바로 세례 요한이 누리지 못했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들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이미 맛보고 있는 천국의 기쁨들을 여러분 누리셔야 돼요.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공동체와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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