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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누가복음

누가복음 1장 1-4절 복음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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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 1-4절
1: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풍성함을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누가복음을 정말 자주 읽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설교만이 아니라, 설교보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일상의 삶 속에 가득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누가복음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적어도 2024년에는 이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나와는 거리감이 있는 타인의 이야기로 여기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대신 예수님의 삶 속에 나를 투영하고, 예수님의 삶 안으로 내가 직접 들어가는 성경 묵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방관자처럼 책을 읽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자신의 전제 속에서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그 내용이 나에게 유익이 될 때만 '이렇게 적용해야지' 하며 별도의 과정을 거쳐야만 의미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의 삶 전체가 누가복음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는 제자들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제자들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일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했지만, 아직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았으므로 그 온전한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사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능력 안에서, 오늘부터 함께 읽을 누가복음 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 속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은 복음서이며, 복음서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으로 나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같은 공관복음은 순서가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예수님의 삶을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하여 역사적인 사실을 잘 설명합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저자인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신의 신학적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냅니다. 저는 여러분이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역사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이 다시 한번 변화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누가복음의 서론, 즉 누가가 왜 이 복음서를 썼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는 누구일까요? 누가가 유대인인지 헬라인인지에 대한 약간의 논쟁이 있지만, 대부분의 신학자는 그를 이방인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직업은 의사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헬라인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주된 이유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매우 유창하고 뛰어난 헬라어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헬라 원어민만이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의 문체이기에 많은 신학자가 누가를 이방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누가복음이 갖는 상징성은 중요합니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책이라면, 누가복음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누가는 바울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선교 여행에 동참했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바울뿐만 아니라 수많은 1세대 사도들과의 교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고, 그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누가는 자신이 직접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라고 말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보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통해 전해 들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그 글에 권위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들었던 자입니다. 그리고 그 들었던 것들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 누가복음이 66권의 성경에 포함된 것은, 교회의 역사 속에서 그 역할과 권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권위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자의 자라온 배경, 학식, 환경,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누가가 성경을 기록할 때의 태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이드라인을 줍니다. 그는 3절에서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라고 말합니다. 현대적인 용어로 말하면, 의사였던 누가는 철저한 리서치(research)를 한 것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도와 초대교회 성도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세히 미루어 살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탄생 이전 사건들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이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갖는 의미를 깊이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기적 속에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가나안 여인이나 백부장의 하인과 같은 이방인들을 고치시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열방을 향한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무조건 "아멘"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은혜이지만, 때로는 의문점이 들고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믿으라고 하기보다, 오늘 누가가 그랬던 것처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 풍성한 은혜와 하늘의 놀라운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시대를 거쳐 '나에게'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오경을 들었을 때와, 훗날 회당에서 그것을 글로 읽었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누가복음을 '광야를 사는 출애굽 백성'의 심정으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자처럼, 나그네처럼 살아갑니다. 이 땅은 우리가 가야 할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광야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교회를 통해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누가복음은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각하'라는 표현을 통해 높은 지위의 실존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은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지체 높은 데오빌로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아가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을 꼽으라면 저는 4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데오빌로는 이미 복음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누가는 그가 가진 믿음과 지식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누가복음을 읽으며 이 저자의 의도를 풍성히 이루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거기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알 만큼 아는' 존재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 더욱 알아가야 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누가가 그랬던 것처럼 자세히 미루어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단순한 지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녹아들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방관자적인 독서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으로 들어가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원했던 것입니다. "당신이 가진 권력, 부, 명예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우월하기에, 오직 예수님만을 주로 고백하며 바라보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서론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광야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어렵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하고 옛 모습을 그리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 광야 한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했다는 사실입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길을 인도했고, 때로는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완성하셨기에, 그들보다 더 온전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광야에 그냥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거쳐 복음을 전달받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복음을 받은 자는 그것을 단지 천국 가는 티켓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전하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갑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하고 삶이 답답한 이유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믿음은 확고해집니다.

이제 우리의 읽는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광야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곳에서 예배와 공동체를 통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자세히 살피고 삶에 적용하며, 내 욕심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을 통해,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합니다." 이러한 열망이 우리 안에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2024년, 누가복음을 통해 우리 가운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 놀라운 일이란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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