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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14장 8-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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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8-21절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서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오늘 본문은 빌립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답하시는 내용입니다. 빌립은 8절에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는 간구를 합니다. 왜냐하면, 6절에서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갈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빌립에게는 아주 당연한 질문이며 요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서 지속해서 지적했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한 자는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 나아가서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런데 정말로 여러분들이 구하는 것마다 다 이루어졌나요?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4절의 약속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12절을 보아야 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자들은 반드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모두 십자가의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때 우리의 구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5절)

 

여기서 말하는 계명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바뀌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자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를 나만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를 나만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내 사랑하는 성도를 나만큼 사랑하지 못합니다.

내 사랑하는 이웃을 나만큼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만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하는 일처럼 너희도 행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내길 소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무능력으로 좌절할 때마다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나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힘들지만 오늘 하루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말씀 묵상 후에 드리는 질문

1. 우리도 빌립처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간청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놓치고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빌립과 같이 생각할 때가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2. 우리는 간청하는 형식과 응답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구할 때의 전제 조건을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기도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을 지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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