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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묵상/창세기

창세기 9장 18-29절 (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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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 18-29 (1)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노아의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라고 부르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수치심이 드러나고 함에게 저주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노아가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는 모습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관계가 있습니다. 클라인 교수님은 창세기 3장과 9장을 비교하여서 함에 대한 저주와 셈과 야벳의 행위(내일 살펴볼 것입니다.)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하나님 자녀와 악마의 자녀 사이의 영적 대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예언했다. 노아의 저주를 유발시킨 사건은 노아의 아들 가운데 발견되는 영적 대립이었다. 함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뱀의 자손임을 증명하였다. 그 이유는 인간의 타락 사건에서 뱀이 의도했던 것이 아담과 그 아내를 부끄러운 나체의 상태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함이 술 취한 아버지의 부끄러운 나체를 악하게 조롱한 것은 함이 사탄을 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셈과 야벳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아의 부끄러움을 덮어준 것은 창세기 3장 20절에서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 3장 15절이 말하는 여자의 후손-하늘 아버지의 형상으로 새롭게 된 구속 백성-이 노아 예언의 배경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창세기 3장 14-15절과 창세기 9장 25-27절의 연결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은 저주를 유발시킨 것이 사탄과 함의 악한 행위들(두 경우 모두 나체를 드러내는 일과 관계있음)이라는 것이다."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보았다는 것은 노아의 실수를 조롱하며 형제들에게 아버지의 수치를 재미로 누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가나안의 아버지 함을 저주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25절에 함 대신 가나안이 저주를 받습니다. 여기에 언어유희가 사용되는데, 클라인 교수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살이의 저주는 가나안의 이름이 주는 청각적 인상(어원의 의미와 관계없음)에서 이미 암시된다. 동사 '카니아'는 히필형으로 쓰이면 '정복하다'의 의미를 가진다. 이 동사는 이스라엘이 약속된 유업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이 가나안 백성들을 이스라엘 앞에 정복시키시는 대목에서 사용된다. 그리고 그 정복은 가나안 저주가 실현되는 실재의 사건이 되었다." (우리가 조심해서 해석해야 할 부분은) 함에 대한 저주나, 셈과 야벳에 대한 축복은 구속의 영역 안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일반 역사에서 이 저주와 축복의 적용을 찾는 것은 문학적-정경적 문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부연 설명을 하면, 어떤 목사님들이 함의 자손이 흑인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백인들의 노예가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참고로 가나안 사람들은 흑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은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노아의 저주는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 왕국과 세상 왕국이 갈라지는 시작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았지만, 인간 스스로 변화될 수 없는 죄가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능력도 없습니다. 오히려 죄를 웃음거리로 만들며 서로를 조롱하며 분노합니다. 이렇게 연약하며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온전한 제물로 드려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아무 공로 없이 받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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