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장 16-21절
16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 16절에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고 이사야 53장 1절을 인용하여 질문을 합니다.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이사야서 53장 2절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외모를 보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윗과 같은 정복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죽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조롱과 멸시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 저주를 예수님께서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은 미련한 것입니다. 성경의 예를 들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사건이지만 결론을 모르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믿을 수 없는 상황들입니다. 첫 번째로 열왕기상 18장에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누구의 신이 진짜 하나님인가”라는 결판을 내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씩 잡아 나무 위에 놓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이 송아지를 불태워 버릴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몸을 자해하면서 큰소리로 부르며 야단법석을 떠는데 엘리야는 물 넷 통을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습니다. 나무와 제단 주위의 도량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사람이 불을 가지고 와 붙이려 하여도 불이 붙지 않을 정도입니다. 어느 이러한 상황에서 나무에 불이 붙어 송아지가 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까?
두 번째로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여리고 성을 함락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은 견고했고 그들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성처럼 보였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성을 차지하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여리고 성에 몰래 들어가 성문을 열 비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일은 매일 아침에 여리고성을 한 바퀴씩 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날에 성을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불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믿을 수 있습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 이야기를 믿으면 세상은 여러분을 미련한 자라고 말합니다. 정신이 나간 자입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 날 수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삼일 만에 부활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제정신으로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텅 빈 무덤은 없습니다. 그리고도 자기가 갖고 있는 돈, 시간, 열정을 다 교회에 갖다 바치는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까? 여러분 정말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기독교를 상식적으로 믿고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능력을 각기 다른 그룹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불이 붙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제단에 하나님은 불을 보내시오 물까지 마르게 하시면 송아지를 타 없애버리십니다. 견고하게 서 있었던 여리고 성이 일곱 번째 돌고 나팔 소리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에 맥없이 무너져 버립니다. 죽음을 이길 수 없는데 예수님이 죽은 지 3일 후에 부활하셔서 그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어 버렸고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들음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9-20절에 세상의 사람들이 일반 은혜로 말미암아 핑계치 못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사도 바울은 신명기 32장 21절을 인용하며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고발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따라 헛된 것을 숭배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백성이 아닌 자들’로 부르고 ‘미련한 민족’이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끈질긴 사랑을 이사야 65장 1-2절에 표현합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하나님의 찾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종일 손을 펴서 그들을 불렀듯이 패역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혜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메신저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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