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묵상/전도서

전도서 3장 16-22절

reformedmind 2020. 11. 9.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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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장 16-22절 
16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해 아래 세상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유익한 일인가? 민주주의와 인본주의가 발달할 수록 모두가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성향을 가진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도덕적 비전을 이 땅에서 실천하기 위하여 정의, 평화, 평등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투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공공선을 위하여 노력하며 정의를 찾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곳을 보게 합니다. 재판하는 곳과 정의를 행하는 곳에 악이 있다고 정의합니다. 해 아래 세상에서 부정과 불의한 것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전도자가 악을 보고 있는 장소입니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되어야 하는 재판하는 곳과 정의를 행하는 곳에서 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갖고 있는 근본적 한계가 있습니다. 평등을 말하지만 가진 자에게 유리한 법정의 벽은 더욱더 견고 해지며, 정의를 말하지만 기준의 잣대는 매 순간 변하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이 불의를 당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부도덕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집입니다. 가장 공의로우며 거룩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성전)이어야 하는데, 그곳은 거짓과 탐욕과 우상 숭배가 넘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의와 공평을 행하는 장소가 악으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어디서 정의와 거룩함을 찾아야 합니까? 전도자는 해 아래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눈을 해 위로 향하게 합니다. 그래서 17절에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이 땅에서 정의와 공평이 사라질 때에 성도들이 보아야 할 곳은 하나님이 계신 하늘 보좌입니다. 모든 불의와 부정을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죄와 악의 결말은 사망이기 때문이 성도들은 사망을 이기시어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알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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