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묵상/창세기

창세기 38장 12-30절

reformedmind 2024. 2.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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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12-30절
12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유다는 자신의 아내가 죽자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애통의 기간이 지나자 그의 친구 히라와 함께 양의 털을 깎기 위해서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이 당시 문화를 보면 남자들이 양의 털을 깎기 위하여 집을 떠나면 도덕적으로 문란한 행동이 허용되었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있던 창녀를 취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도적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문'이란 단어는 가나안 종교의 신전 문을 가리키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바알과 아스다롯 신전에 갔지만 그 옆에 있는 매음굴에서 욕정을 해결했습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다가 이방인 신전에서 창녀를 취한 불순종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다말의 행동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말은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유다)가 자신을 셀라의 아내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떻게 자신을 창녀로 속이고 시아버지와 동침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힌트는 요셉의 꿈입니다. 성경 전체를 볼 때에 요셉의 꿈은 여인의 후손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야곱의 자녀, 유다를 통해서 다윗으로 이어져야 한다면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언약(약속)의 후손을 위해서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히려 다말은 창녀의 취급을 감수하면서 약속의 후손을 낳으려는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말이 자신이 받은 오해를 미리 없애기 위해서 유다에게 지팡이와 도장과 끈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본 유다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26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상식으로는 다말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마태복음의 족보(“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1장 2-3절)에서 다말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그녀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본 자처럼 대우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방 여인 라합과 룻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8장의 막장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뛰어나거나 하나님께 순종을 잘해서 언약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같이 죄 된 행동을 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가볍게 여겼던 유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연약한 자들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부족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redlong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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